1989년 7월 23일 오후 4시 23분 경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중심부 마을의 주한미군 부부의 집안으로 해외입양되어 그 호화저택 거주하던 한국계 입양

중학생 헤나 김 오르번스 양(14)이 사립 중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 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인근 마을 길로

걸어가던 도중 슬그머니 옆을 추적하여 쫓던 서비스견 신봉 미군들 8명한테 납치당하여 낯선 지역의 한 마을 호화 저택 어딘가로 끌려가 감금되었다.

그들 미군들은 그 어린 중학생을 방 안에 감금당한 뒤 각목을 들고 12시간 동안 안내견의 배변과 털을 강제로 먹이고 집단폭행을 저지르다

사망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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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9일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 뒤 이라크의 서부 사막에 세워져 있는 미군기지에 입대하여

이라크의 자유작전을 수행하려고 부대 인근 사막 지역 주변 마을에 군용 지프차를 몰며 후세인 정권의 반군들을

소탕하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이라크 전역에 들끊기 시작했고 미군들과 연합군들은

그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같은 해 2005년 3월 1일 자신의 부하군인 10명을 이끌고 

군용 지프차를 몰고 사막 마을에 숨어 있는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소총을 갈겨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알카에다가 쏴놓은 포탄에 맞아 지프차가 폭발하였고 자기 군용차에 탑승한 채 총을 쏴 갈긴

대부분의 부하 군인들만 내부 폭발로 그 자리에서 튀어나온 채 사망하고 자기만 운전대를 잡다 양쪽 다리를 잃은 채

위로 튀어나와 쓰러졌다.

그렇게 해서 군 의료 헬기에 응급수송되어 미군 야전병원에서 응급 절단 수술을 받고 미국 미주리 주에 세워진 

민간병원으로 갔다. 그 곳에서 2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고 1개월 동안 의족 착용 후 재활 치료를 계속 받으며

살다가 퇴원한 뒤 군에 복귀하였다. 

그 곳에서 오랫 동안 군 복무를 열심히 한 뒤 2008년 6월 25일 날 한국전쟁 특집으로 국회 의사당을 방문하여

상하원 전체 동의를 얻어 전사자들이나 상이군인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그러다가 2008년 7월 2일 날 그는 자신의 어여쁜 여자인 엘리사 하모러스 씨(38)와 결혼하여 8일 동안 잘 살았다. 

그 때부터 아내를 혼자 두고 나중에 2008년 7월 10일 날 자신의 양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채 다시 이라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남쪽 기지로 복귀하였다. 

그러다가 2014년 7월 29일 날 머나먼 세월이 흐른 뒤에야 10일 기간의 마지막 휴가로 잠시 군 부대를 떠나고

바그다드 공항으로 가서 미국 미주리 주로 향하는 항공기를 타고 미국 미주리 주에 있는 자기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문을 열고 자기 아내를 무참히 폭행했다.

그렇게 8일 동안 자신의 철제 의족으로 걷어차고 뺨을 후려치고 죽도록 지팡이로 후드려 패면서

24시간 동안 같은 방 침대에 누워 잠자지 못하게 하고 온갖 막일과 가사노동을 시켰다. 

그러다가 같은 해 2014년 8월 8일 그 현역복무 부상군인은 복귀일을 앞두며 자기 아내를 멱살잡아 뺨을 후려치고

철제 의족으로 배를 밟자 나중에 창고로 가서 그 안에 보관해두었던 전기톱을 하나 꺼내들고

집으로 돌아가 쓰러져 있던 자신의 아내의 양쪽 다리를 절단하여 살해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죽어 있는 아내의 시체를 보고 그걸 자신의 여행가방에 쑥 넣어 차를 몰고 미주리의 한 야산 호수에

던져 유기했다.

(다른 얘기로는 여러 번 휴가 포상 받고 집으로 돌아가 평소 아내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반복하다가 복귀일 지키고 군 복귀한 뒤 오랫동안 이라크 참전하기를 반복하며 마지막 휴가 포상 받고 돌아온 후로 갑자기 이런 끔찍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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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27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미군 기지촌 마을에 임은해 씨(28)라는 한 20대 젊은 위안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1965년 4월 10일 날 가난한 집안에서 한 동아일보 신문의 위안부 모집 광고 보고 자발 입대하여

40일 동안 어느 동두천시 보산동에 위치한 기지촌 술집에서 평화롭게 가까운 부대의 미군들을 받아들이며

술과 향락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위안부들 주위에서 서비스견 동승 의지한 주한미군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다른 8명의 부하 미군들과 함께 데리고 그 피해자가 일하던 술집 영역에까지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간담회를 열었다.

그 서비스견 동승 시각장애 상이군인의 이름은 칠리 햄프턴 육군 상사(37)였다.

그런 서비스견 동승 군인이 자신과 함께할 미군 위안부랑 함께 하여 섹스할 상대를 구했다.

그래서 물색한 대상이 20대 젊은 나이의 임은해 씨라는 술집 점원이었는데... 그녀와 손을 맞잡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섹스를 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감히 거절을 하였다.

그래서 그 주변 미군들이 '어디서 감히 서비스견 동승 군인을 감히 푸대접하냐' 라는 인식이 자리잡아

그 위안부를 밤새도록 계속 추적하고 스토킹한 뒤 멱살을 잡아 얼굴을 폭행하고 수시로 집단 폭행을 일삼아

그 서비스견 주인이 살던 집으로 끌려나가 강제로 접대하게 하였다.

그 집 안에서 서비스견 의지한 시각장애인 군인이 그들의 포위 하에 그녀를 붙들며 방 침대로 들였고

그 방 안 침대에 강제로 눕히며 강제로 섹스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그 곳에서 자신의 눈이 되어주던 서비스견의 입과 강제로 딥키스하도록 시켰고 심지어는 그녀

여성 생식기까지 강제로 서비스견 입으로 핥게하여 쑤셔 박아 섹스를 하도록 하였다.

그걸 거부하면 무조건 폭행을 일삼았다.

이 짓을 6차례 동안이나 반복해서 강간을 일삼으며 문 밖으로 술집으로 돌려보내 밤새도록 일하게 하다가 또 

자신의 친한 미군들을 시켜 스토킹으로 다시 자기 집으로 납치하여 끌어왔는데..

그 때문에 젊은 위안부 임은해 씨는 입과 혀 주위와 생식기 주위에 심한 종기가 몸 전체까지 퍼져 나간 채로

자기가 몸 담아온 술집에서 일하며 미군들을 대접하다 주변 위안부 여성들과 그들을 다스리던 주인 마담에 의해

발견된 뒤 신고되어 넘겨졌다.

그래서 그녀는 검문소에 의해 붙잡혀(?) 동두천시 소요산 어느 지역에 세워진 몽키하우스 낙검자 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그 곳 시설에서 일하던 보건소 직원들은 이런 특이한 증상을 보인 피해 여성들을 발견해왔고,

이들 총 179명의 성병 환자들을 발견해 강제 수용시킨 페니실린 24~30발을 맞게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총 인원은 390명)

이 때는 동두천시 주한 미군 부대 측에서 미국 내에 거주하던 상이군인들의 항공기 내 서비스견 동승 운송을 

법적으로 기지촌에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고 법제화한 시기 때부터인데 그 때부터 계속 갑자기 백명 이상

이런 성병 낙검자들이 기지촌 내 술집마다 갑자기 늘어나 보건소 관계자들과 술집 주인들이 발견하여

몽키하우스 수용소에 감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갇힌 임은해 씨(28)는 아무리 보건소 감독 하에 성병 검진을 제대로 받고 페니실린을 30발이나 맞아

성병 치료를 받아도 이런 특유한 성적 인수 감염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고 결국 페니실린 한 발 마지막 맞고

나중에 페니실린 과다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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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일성이란 놈이 소련과 합작하여 선전포고도 없이 새벽에 불법 남침한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때 그 놈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북한 인민군들과 종북좌파들이 인민재판을 통해 양민들을 수십명 학살한

사건입니다.

그 때 미군과 유엔군들과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없었다면 우린 꼼짝 없이 완전 적화통일 되어 우리의 부모와 자식들까지

양민학살을 당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또다시 제 2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당시 이름도 모르던 우리나라를

공산주의의 칼날로부터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유엔군 용사들과 미군 용사들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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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서부터 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우리의 미군 분들과 유엔군 분들과

한국군 분들의 영혼을 기리는 날입니다.

북한의 무장간첩을 제압하고 쏴죽여온 우리 국군 장병들과 북한의 무장공비의 총격으로 순국하신 경찰관님들과

국군 아저씨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무력도발로 사망하신 서해의 호국영령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모두들 좋은 휴일 보내시고 안전한 호국 영령 추모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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