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8월 27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미군 기지촌 마을에 임은해 씨(28)라는 한 20대 젊은 위안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1965년 4월 10일 날 가난한 집안에서 한 동아일보 신문의 위안부 모집 광고 보고 자발 입대하여

40일 동안 어느 동두천시 보산동에 위치한 기지촌 술집에서 평화롭게 가까운 부대의 미군들을 받아들이며

술과 향락을 접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위안부들 주위에서 서비스견 동승 의지한 주한미군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다른 8명의 부하 미군들과 함께 데리고 그 피해자가 일하던 술집 영역에까지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간담회를 열었다.

그 서비스견 동승 시각장애 상이군인의 이름은 칠리 햄프턴 육군 상사(37)였다.

그런 서비스견 동승 군인이 자신과 함께할 미군 위안부랑 함께 하여 섹스할 상대를 구했다.

그래서 물색한 대상이 20대 젊은 나이의 임은해 씨라는 술집 점원이었는데... 그녀와 손을 맞잡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섹스를 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감히 거절을 하였다.

그래서 그 주변 미군들이 '어디서 감히 서비스견 동승 군인을 감히 푸대접하냐' 라는 인식이 자리잡아

그 위안부를 밤새도록 계속 추적하고 스토킹한 뒤 멱살을 잡아 얼굴을 폭행하고 수시로 집단 폭행을 일삼아

그 서비스견 주인이 살던 집으로 끌려나가 강제로 접대하게 하였다.

그 집 안에서 서비스견 의지한 시각장애인 군인이 그들의 포위 하에 그녀를 붙들며 방 침대로 들였고

그 방 안 침대에 강제로 눕히며 강제로 섹스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그 곳에서 자신의 눈이 되어주던 서비스견의 입과 강제로 딥키스하도록 시켰고 심지어는 그녀

여성 생식기까지 강제로 서비스견 입으로 핥게하여 쑤셔 박아 섹스를 하도록 하였다.

그걸 거부하면 무조건 폭행을 일삼았다.

이 짓을 6차례 동안이나 반복해서 강간을 일삼으며 문 밖으로 술집으로 돌려보내 밤새도록 일하게 하다가 또 

자신의 친한 미군들을 시켜 스토킹으로 다시 자기 집으로 납치하여 끌어왔는데..

그 때문에 젊은 위안부 임은해 씨는 입과 혀 주위와 생식기 주위에 심한 종기가 몸 전체까지 퍼져 나간 채로

자기가 몸 담아온 술집에서 일하며 미군들을 대접하다 주변 위안부 여성들과 그들을 다스리던 주인 마담에 의해

발견된 뒤 신고되어 넘겨졌다.

그래서 그녀는 검문소에 의해 붙잡혀(?) 동두천시 소요산 어느 지역에 세워진 몽키하우스 낙검자 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그 곳 시설에서 일하던 보건소 직원들은 이런 특이한 증상을 보인 피해 여성들을 발견해왔고,

이들 총 179명의 성병 환자들을 발견해 강제 수용시킨 페니실린 24~30발을 맞게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총 인원은 390명)

이 때는 동두천시 주한 미군 부대 측에서 미국 내에 거주하던 상이군인들의 항공기 내 서비스견 동승 운송을 

법적으로 기지촌에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고 법제화한 시기 때부터인데 그 때부터 계속 갑자기 백명 이상

이런 성병 낙검자들이 기지촌 내 술집마다 갑자기 늘어나 보건소 관계자들과 술집 주인들이 발견하여

몽키하우스 수용소에 감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갇힌 임은해 씨(28)는 아무리 보건소 감독 하에 성병 검진을 제대로 받고 페니실린을 30발이나 맞아

성병 치료를 받아도 이런 특유한 성적 인수 감염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고 결국 페니실린 한 발 마지막 맞고

나중에 페니실린 과다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반응형

우리나라 대한민국 내 주한 미군이 철수되지 않기 위해서 박정희 정부 시절 기지촌을 지어서

미군 유엔군 전용 위안부들을 모집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송탄시 및 중앙로(행복로)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인구 수 전체 집계만 해도 총 60만 명이 넘는다.

그 중 1만여 명만 직업소개소의 취업 사기와 재혼한 사이 가까운 사람에 의해 기지촌에 버려져 끌려간 여성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59만여 명은 전부 다 생계 문제와 돈 벌이나 미군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원한 여성들이다.

그 당시 동두천시 보산동 술집에서나 의정부 중앙로 술집에서 일하던 위안부 여성들은 아무리 나쁜 정예병을

만나도 그냥 가벼운 폭행만 당하고 괴로워하며 평화롭게 받아들일 정도였는데...

나중에 서비스견 동승 군인들이나 의족 착용 현역 군인들을 대접할 때부터 더 험악해지기 시작하였다.

반응형

오늘은 김일성이란 놈이 소련과 합작하여 선전포고도 없이 새벽에 불법 남침한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때 그 놈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북한 인민군들과 종북좌파들이 인민재판을 통해 양민들을 수십명 학살한

사건입니다.

그 때 미군과 유엔군들과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없었다면 우린 꼼짝 없이 완전 적화통일 되어 우리의 부모와 자식들까지

양민학살을 당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또다시 제 2의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당시 이름도 모르던 우리나라를

공산주의의 칼날로부터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유엔군 용사들과 미군 용사들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반응형

오늘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에서부터 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우리의 미군 분들과 유엔군 분들과

한국군 분들의 영혼을 기리는 날입니다.

북한의 무장간첩을 제압하고 쏴죽여온 우리 국군 장병들과 북한의 무장공비의 총격으로 순국하신 경찰관님들과

국군 아저씨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무력도발로 사망하신 서해의 호국영령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모두들 좋은 휴일 보내시고 안전한 호국 영령 추모하시기를 빕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