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8일 날 경기도 연천군 육군 서부 전선지대 GOP 부대 내에서 근무하던 유현철 중사(26)는 철책 순찰 도중

갑자기 대인 지뢰를 밟다가 발목 부상을 당하여 인근 군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받고

오른쪽 발목에 의족 착용한 채 재활 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그런 뒤 그는 2010년 2월 8일 날부터 완쾌한 몸으로 퇴원한 뒤 원래 군에 복귀하여 장기적으로 복무해왔다.

그렇게 하다가 2011년 8월 4일 날부터 윗선에서 5일 기간 휴가를 포상받았고 다음 날 8월 5일부터 내무반에서 군 가방을

챙겨 멘 뒤 부대장님들 앞에 휴가 신고식을 올렸고 잠시 군을 떠나 MP3로 소녀시대 음악을 비롯한 걸그룹 가요를

자주 틀면서 인근 부대 터미널을 방문하여 의정부 행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지하철 1호선 열차를 타고 의정부 역까지

내렸다.

그런 뒤 그가 그 역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 저 멀리 중앙로 외진 골목에 들어선 붉은 방석집 홍등가를 자주 돌아다녔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방석집 홍등가를 막 돌아다니며 산책을 걷던 도중 자신의 의족으로 문을 자꾸 걷어차

버리고 뛰어다녔다.

그는 며칠 전 자기 부대 내에 오래 복무하다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으로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자주 보았는데..

나중에 그 소녀시대 걸그룹 멤버들이 춤추는 것을 볼 때면 무조건 자기 부대로 끌고 가서 강간하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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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18일 날 오전 4시 30분 경 경기도 인천광역시 백령도 부대에 복무 중인 해병대 장교 김현철

대위(27)는 15명의 부하 병사들과 함께 지뢰 금속탐지기를 들고 해안가 주변을 탐색하여

걸어다니시던 도중 갑자기 무더기로 매설된 지뢰더미를 밟아 양쪽 다리 무릎 위까지 큰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그는 부상병들의 도움으로 응급헬기 안에 긴급 후송되어 인근 군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나중에 응급 절단 수술을 심하게 받고 양쪽 다리에 대퇴 의족을 차고 입원과 재활 치료를 병행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그 분께서는 8월 12일부터 퇴원하여 자신이 몸 담아 복무해오던 백령도 부대에 복귀한 뒤

10월 15일 날까지 백령도 해안가 지뢰탐지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그는 포상받은 휴가로 군을 떠날 때마다 인천광역시 유람선과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지하철 1호선

신길역을 따라 서울지하철 5호선 천호역까지 방문하여 자주 로데오거리를 드나들었는데...

그 곳 식당가 중에서 어느 순대국 식당에 들어가서 술을 오래 쳐 먹다가 식당 주인과 점원들에게 폭언을 

행사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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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둠칼날공화국 남서쪽 지방 출신이자 칼림도어 마샬의 격전지 일리다리 육군 기지로 복무해온 한 칼도레이 악사 중령님께서 지뢰밭을 잘못 밟아

걸어다니시다 결국 양쪽 다리 무릎 위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셨다.

그 분께서는 의무병의 도움으로 신속히 군 병원에 후송되어 양쪽 다리 무릎 위를 절단하는 응급수술을 받고 5개월 동안 민간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과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고 살아가셨다.

그러다가 모든 치료를 다 받고 쾌활한 모습으로 퇴원하여 다시 원래 군 복무를 하게 되셨는데...

그가 자기 군 부대로 복귀를 한 지 5년이 되어서야 대령 계급으로 승진하게 되었고 육군 군사학교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팡이를 짚고

훌륭한 교수 일을 해오셨다.

그러다가 그는 휴가 때마다 성매매 업소에 다니게 되어 유희들과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돌아다니면서 자기 맘에 안 드는 대답을 하면 할 수록

갑자기 분노하여 엄하게 꾸짖어 자기가 쥐고 있던 한 손 지팡이를 들어 세게 폭행하기 시작하셨다.

그 짓을 1개월 동안 매일 자꾸 하다가 나중에 민간인들의 경찰 신고로 군 검찰에 회부되어 군사재판을 받고 보직해임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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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소령님(28)은 2012년 1월 어느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뒤 서부전선 GOP의 소대장으로 배치되어 24시간 밤새도록 순찰근무를

오래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위로 승진할 때부터 4개월 후인 2015년 3월 6일 날 오후 2시 경, 그 소령님께서 자신의 부하 군인 150명을 이끌고 서부전선 철책 주변을 순찰하여

왼쪽 다리로 땅을 밟다 결국 북한이 대량으로 매설해놓은 목함지뢰에 밟혀 큰 부상 입고 군 야전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어 절단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절단된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 4주 동안 입원과 재활치료를 반복한 후 원래 몸담았던 군에 복귀했는데 같은 해 4월 15일, 5월 16일 날

또 다시 누군가가 매설해놓은 목함지뢰에 밟혀 의족이 계속 부러져서 군 야전병원과 민간병원을 오가며 의족을 교체하느라 부하 군인들과 함께

현장에 못 나가게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심각한 정신질환과 인격장애를 가지게 되어 혼자 힘들고 괴로워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대를 버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속한 부대 내 공금을 빼돌리지 않았고 오로지 부러진 의족을 들고 철책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방 순찰 근무를 열심히 하였다.

심지어는 민간 병원에서 입원 재활 치료를 다 받고 다시 원래 군으로 복귀하는 날이면 날마다 30명의 부하 군인들에게 휴가 포상을 해주어 자신의 아내가 살고 있던

서울시 서초구 동부 먹자골목 부근 단독주택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인근 먹자골목 식당에까지 안내하여 사이좋게 식사를 하고 함께 여행 다녔다.

하지만 그가 군 병원과 민간병원을 오가며 새 의족으로 교체하여 나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은행 대출과 사채를 써서 갚으려 하다가 자신이 소위 때

결혼한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서 수십억원의 빚을 갚으면서까지 군에 복귀하여 밤새도록 대대장으로써 일을 하며 순찰 근무를 돌아서 월급을 빠듯하게 버느라

정신질환과 인격장애가 심각해지게 되었고 미쳐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 소령님께서는 더 이상 서부 전선 GOP 부대의 중대장으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관심병사로 낙인찍혀 현장 근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자기 휘하에서 군 복무 중인 부하 군인들 30명에게 휴가 포상을 한 뒤 잠시 군을 떠나 다시 서울시 서초구 동부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그 소령님께서는 2016년 8월 28일 날 저녁 7시 경 서울시 서초구 동부 단독주택 마을이나 식당가에 30명 부하 군인들을 데리고 가다가

그 놈들이 운영하던 식당가에까지 모조리 몽둥이 들고 쫓아가서 전부 다 때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 명령을 들은 부하 군인들은 지체 없이 그 소령님 집 안에 들어 있던 야구방망이와 각목을 잡고 식당가로 달려나가 유리창을 깨부수고

그 안에서 밥 먹던 손님들과 그 안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들과 주인들을 때려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울시 서초구에 세워진 군사법원에 넘겨졌어도 처벌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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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히 허언증에 놀아나서 이런 말을 하나 늘어놓으려는데..

임성근 사단장님께서 2023년 7월부터  1사단 부하 해병대원들에게 조끼를 지급해주지 않고

그냥 멋대로 해병대 표식 과시할려고 맨몸으로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장화신긴 채

아무런 전문성도 없이 급류에 휩쓸려나가는 위험한 강물 속으로 투입시켜 인간띠 수색을 하라고

윗선에서 지시해서 채수근 일병님 한 분을 숨지게 하셨던 거 그거요...

사실 그 분께서는 해병대1사단에 전입 온 소령 시절 빗물에 쓸려나간 목함지뢰에 오른쪽 다리를 닿은 뒤로

갑자기 폭발하여 민간병원에 실려가서 응급 절단 수술 받고 의족 치료 받은 기록이 있었던

의족 착용 현역 복무 중인 장군님이신 걸로 보입니다요.

그러면서 그 분께서는 나중에 해병대1사단의 사단장으로 취임하실 때 자신이 책임을 지고 통솔하시던

해병 포병 대대 시절 열심히 군 복무하고 계신 채수근 일병 외 여러 명의 사병 해병대원들에게 엄청 인자하시고

뜨거운 전우애로 착실하게 잘 대우해주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분께서는 사단장으로 재직중이던 2023년 4월 28일, 방첩사령부 요원을 사칭하던 남성 민간인의

농간으로 당시 그 곳 안에 열렸던 주 임원사 교대식의 출입을 통제하시던 위병소 초병들이 속아넘어가서 그냥

들여보내주셨는데... 사단장님까지 거기 속아넘아가 자기 부대 내에서 그 사칭한 민간인과 접견하여 직접 커피까지

대령해준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셨는데...

그 사칭한 민간인과 둘이서 커피를 대령하고 대화를 나누시던 도중에 자신의 소령 시절 빗물로 강물에 쓸려간

목함지뢰 폭발로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 받고 의족을 착용하다 무리한 군 복무 도중 의족이 계속 부러진 걸 두고

어마어마한 의족 수리비와 월급 문제로 고민으로 한탄하며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게 전부 거짓말일지도 몰라서 해병대원 전체가 달려가서 나를 비난하고 욕할지도 모른다.

이 글이 임성근 소장님 자신을 명예훼손하는 일이라서 나를 고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 글의 문자대로 밝혀지고 있는 날이 올 수 있기에 나는 이 날을 기다리며

이런 거짓된 글을 써서 진실게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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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천호동 텍사스촌은 1970년대 초부터 세워진 사창가라서 조폭들과 마담들의 인신매매 납치 문제로 세워져

문제가 많은 사창가였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런 피해자들이 사창가를 떠나게 되었고

1990년부터 1994년 1월까지  오로지 의붓부모 학대를 피해 가정을 떠난 여성 청소년들이 거주하기 시작해서

아주 평화로운 장소로 변했다.

그들은 아주 평화롭게 자신이 신체건강한 정상인 손님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해서 서로 흥정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정한 시간대로 관계를 맺으며 돈을 화대로 받았다.

그 때문에 그들이 모든 선불금 빚을 다 갚아도 수천만원이 남아돌 정도로 아주 부요한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4년 2월 때부터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졸업 안내견을 동승한 일부 시각장애인들과

100명의 안내견 추종 대학생들이 천호역 부근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천호 텍사스촌에 자주 떼거지로 안내견 데려가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유희들의 방에 억지로 안내견을 집어넣으려 하고 조금만 안내견한테 잘못했다 싶으면

자기들이 사들인 공구를 사용해 집단으로 폭행하거나 여러 번 찔러 죽여 살해하는 일을 저질러왔다.

그리고 2002년도부터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전투 도중 지뢰 폭발이나 전상으로 장애를 입은 상이군인들의

현역 복무를 허가함에 따라서 500명의 부상장교들이 자신의 부하 군인들과 함께 첨단 의족을 착용한 채

장기 현역 복무를 하기 시작했고나중에 GOP 부대 내에서 부하 군인들의 유명한 천호동 텍사스촌에 대한 소개를

들은 17명의 부상 장교들이 휴가철 때를 잡아 같이 휴가 나온 부하 군인들을 데리고 천호역 부근으로 가서

천호동 텍사스촌을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그들 장교들은 사창가 해당 구역을 선택하여 그 곳에서 일하는 성매매 유희들과 돈을 흥정하며

30분에서 몇시간 기간을 책정해 안방으로 들어가 술 마시는 동안 감히 나의 힘겨운 군대 생활에 공감하지 않거나

섹스나 돈을 감히 요구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옆 부하 군인들과 덩달아 집단 폭행을 일삼는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성매매 유희 여성들이 여러 번의 흉상과 두개골 파열로 피흘리며 사망하거나

중증 장애인이 되어 사창가를 퇴사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그 여성들을 지키고 있던 대부분의 가디언 조직 폭력배들과 한터전국연합 관계자들이 그들의 폭력

행위를 말리러 해당 구역으로 달려가서 제지하려다 심하게 다치고 죽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 연이은 끔찍한 흉악범죄로 인해 한터전국연합 관계자들과 성매매 건물주들은 자신의 수천억대의 돈을

살해당한 성매매 여성들의 장례식을 치루고 원래 파손한 사창가 문을 복구하고 그 당시 흉악범죄 목격하다

정신적 피해를 입은 성매매 여성들의 정신과 치료에 펑펑 쏟아부으고도 여전히 비용이 부족했다.

그 때문에 일부 한터전국연합 관계자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유능한 의수족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천호 보조기를 세우며 의족 착용 중인 현역 장교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그것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

다른 두 곳만 지어 운영할 수 밖에 없어서 더 이상 전문가를 영입하여 더 많이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비용으로 그녀들의 홀복을 챙겨주고 정신과 치료 인계해주고 회생시켜주다가

재정이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2011년 4월 중순 천호 뉴타운 재개발위원회를 세워서 사창가를 폐쇄할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그 안에서 일하던 성매매 유희 여성들이 잠깐 몇 년간의 직업 준비 시간을 가져달라 하니 어쩔 수 없이

몇년 간의 시간이 흐르도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2015년 8월 4일 날 터진 북한 목함 지뢰 사건으로 두 다리와 한쪽 다리를 잃은 육군 부사관들의

며칠 간 치료 재활 후 군 복귀 소식을 듣게 되자..

그 소식에 당황한 천호동 텍사스촌 관계자들과 그를 지원하던 슈퍼 천호 부자들이 충격을 먹어 그로 인해

이미 연이어 터졌던 의족 착용 상이군인들의 패거리로 인한 끔찍한 성매매 폭력 살인 사건이 미래에 다시

터질 것을 심히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일수록 이 곳 텍사스촌을 다 폐쇄하고 천호동 뉴타운 재개발 계획에 수천억원의 돈을 더 많이 투자하고

성매매 유희들의 타 식당 타 성매매 업소로의 취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결국엔 2018년 12월 22일부터 천호동 어느 사창가 구역에 화재 사고가 갑자기 터져서 난리가 났는데...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부터 다른 사창가 구역 안에서 일하고 있는 가출청소년 출신 성매매 유희들과

일부 채무 대졸자 성매매 유희들이 불안에 빠지게 되어 이 곳에서 빠져나와 다른 직업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뉴타운 재개발 관계자들과 힘을 합쳐 3년 동안 은폐하며 성매매질하다 전부 다 짐을 싸가 사창가를 폐쇄하기로 하였다.

그런 뒤 준비 기간이 지나면 사창가 안에 일하고 있던 수백명의 유희들은 자신을 다스리던 슈퍼 갑부들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다른 집으로 멀리 이사가 다른 직업을 꾸릴 수 있었다.

천호동 텍사스촌은 단 한 푼의 국민세금으로 그들 유희 여성들을 자립시키지 않은 채

수년 동안 계획해온 재개발로 민간 자본의 전폭적 지원으로 폐쇄되어 사라진 유일한 사창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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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0일 날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의족 착용 육군 장교 하전수 소위(22)가

한쪽 오른쪽 발목에 하퇴 의족 착용한 채로 2년 동안 군 복무를 열심히 하다 6일 기간의 포상 휴가를 받고

자신의 휘하로 지내왔던 육군 사병 5명과 그의 일부 형제관계인 해병대 사병 1명과 함께 의정부 중앙로를 계속

돌아다니며 햄버거를 사먹고 장보면서 둘러다니는 동안 밤 9시가 되면 방석집 골목을 찾아다니며

노래방 기기로 서태지 노래들을 '난 알아요.' 부터 '환상속의 그대'까지 선곡하여 마이크 들고 떼창으로 불러댔다.

사건 당일인 2003년 6월 12일날에도 똑같은 시간대로 자신의 사병들과 함께 패스트푸드 점으로 가서

햄버거를 사먹으며 함께 고기 구이를 해 먹으며 술을 마시면서 놀다가

다른 날과 똑같이 저녁 9시 때부터 의정부 방석집 000을 들락거리며 서태지 노래 계속 선곡하여 양주와 맥주를

여러 병 마시면서 춤추며 소리질러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다가 그 현역 장교가 옆 유흥 종사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면서 너도 서태지 노래 환상속의 그대(?)라는 노래를

선곡할테니 대신 불러달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유흥종사자들이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안 부르겠다고 강력히 거부하였는데...

그 태도를 보고 격분한 부상장교가 마이크를 잡고 유흥종사자의 머리를 내리치며 술병을 들고 폭행을 일삼았다.

그의 행동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요를 한 여러 명의 사병들도 짝스에 든 술병을 꺼내들어 계속 유흥종사자들의 

머리에 내리치고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였다.

 

*참고로 육군 소위(정확히 말하자면 중위이다.) 하전수는 2002년 1월 24일 때부터 24시간 경계근무 순찰 돌다가 밤 4시에 갑자기 대인지뢰를 밟아 발목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군 병원에서 응급 절단 수술을 받고 허접한 의족 차고 재활 치료를 20일 간 받다가 다시 군으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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